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과테말라 관계 (문단 편집) === 21세기 이전 === 19세기에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중남미 지역들이 스페인에서 독립한 뒤에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은 미국과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이 과테말라를 포함한 여러 독립국으로 나뉘어지면서 과테말라는 미국과 다시 관계를 맺었다. 19세기부터 과테말라는 미국과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과테말라인]]들의 일부가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도 19세기부터 과테말라에 영향력이 강했다. 20세기에 이르면서 과테말라는 미국의 강한 영향력을 받았다. 미국은 [[냉전]]당시에 정치적으로 간섭을 하는 등 정치적인 압력을 많이 줬다. 이에 과테말라인들은 미국에 반감을 가졌다. 그러면서도 19세기부터 이어진 과테말라인들의 미국 이주는 20세기에도 계속되었다. 냉전 당시에 미국이 과테말라에서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또한 하코보 아르벤스 정부의 토지개혁으로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이권이 빼앗길 위기에 쳐하자, 미국 정부는 카를로스 아르마스의 쿠데타를 지원하여 과테말라 정부 전복에 기여했다. 1960년 [[과테말라 내전]]이 발발하자 미국은 우익 군사정권을 지원하였다. 군사정권이 좌익 또는 그 동조자로 의심되는 사람들 그리고 마야 원주민을 상대로 초법적이고 광범위한 [[제노사이드]]를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날 중국이 미얀마의 군부 독재 등을 노골적으로 비호하는 것과 유사하게 미국에서도 과테말라 군사 독재 정권을 비호했던 전력이 있었다. 과테말라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친미 군사 정권에 성고문당한 미국 수녀의 인터뷰[[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40109260002158?did=NA|#]] 이는 미국의 원교근공 외교정책 즉 냉전 당시 공산권 국가들과 마주본 서유럽이나 동아시아 해안 지대는 지원하되 남미 국가들의 민주주의 성장을 방해하던 정책의 일환이었다. [[패권주의]] 국가 입장에서는 이웃 국가들이 민주화되는 것보다는 독재 국가로 남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이었다. [[일대일로|즉 부패한 군사 독재 국가들은 지배층 일부만 뇌물로 '''매수'''하면 되지만]] 민주주의가 자리잡힌 국가에서는 지배층 일부만 매수하는 방식이 쉽게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과테말라 지식인층 사이에서는 미국의 격심한 증오의 대상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